나는 책을 사서 보는 편이다.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은 책이 사실 그리 많은 것은 아니나, '반납일'이라는 무언의 재촉에 쫓기듯이 읽어내는 것도 싫어하는 데다가 내가 엄청난 량의 책을 읽어제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로 사서 본다. 책 생각이 날 때 서점에 가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어떤 책을 살까 하고 고민하는 것도 행복하다.
각설하고, 어제 서점에 가서 행복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펼쳐 보았다. 책을 고를 때 공감되거나 강력하게 땡기는 부분이 있으면 주저앉고 장바구니에 넣는 스타일인데 이 책 중간에 꽂힌 기름 종이 한 장을 보고 사기로 마음 먹었다. 게다가 요즘 책들은 왜 그리 두꺼운 게 많은지 투덜거리며 고르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리 두껍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읽다보니 자연스레 여름 방학 때 읽다 말았던 <대한민국표류기>가 떠올랐다.
책을 읽다가 그 책이 적힌 문장 하나 하나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그것을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흔하진 않지만 가끔 그런 적이 있다. <대한민국표류기>를 읽을 때도 그랬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을 때도 그랬다. 한 달 사이에 우연히 비슷한 느낌을 두 책에서 받았지만 <대한민국표류기>는 읽기를 중단하고 다시 펴보지 않았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단숨에 다 읽어내려갔다.
<대한민국표류기>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든데... 계속 읽고 싶지가 않았다. 초반 4분의 1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왜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 답안이 되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가. 나는 나대로 살련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해 주고 있다고 느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더 패배자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고 있다가 비슷한 생각이 활자화 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그동안 자기위로를 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실감나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이 책이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응원의 텍스쳐로 읽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하나, 그러기엔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내 정신이 그리 넉넉하지 못 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읽으려고 한 장, 한 장을 힘들게 넘겼으나 계속 읽고 있다가는 온 정신이 패배감으로 가득찰 것 같아서 과감이 접었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펼쳐 보지 않았으니 부산 집의 책상 위에 아직도 고스란히 올려져 있을 것이다. 책을 사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남았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공감되어서 한 문장, 그리고 그 다음 문장, 문장 하나 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는. 문장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감 정도는 <대한민국표류기>나 이 책이나 비슷한데, 어째서 하나는 지독하게도 안 읽어지더니 하나는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잠시.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이 책도 점점 책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난 뒤에는 '용두사미'형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희경의 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가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 글이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한 방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는 말에 난 그럼 유죄네 하고 끄덕이다가,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 나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려 보다가, 지금 나의 위치는 봄날이 간다의 이영애와 유지태 사이 어디쯤일까를 가늠해 보다가, 그러다가 그저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다.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남는 것도 그것 뿐이다.
두 작가 모두 문장력이 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간결하고 힘을 가지고 있다. 각자 조금 다른 이유에서긴 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아직 끝내지 못한 <대한민국표류기>를 유쾌히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 그 때까지 책장 한 켠에 잘 묻어두련다.
각설하고, 어제 서점에 가서 행복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펼쳐 보았다. 책을 고를 때 공감되거나 강력하게 땡기는 부분이 있으면 주저앉고 장바구니에 넣는 스타일인데 이 책 중간에 꽂힌 기름 종이 한 장을 보고 사기로 마음 먹었다. 게다가 요즘 책들은 왜 그리 두꺼운 게 많은지 투덜거리며 고르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리 두껍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읽다보니 자연스레 여름 방학 때 읽다 말았던 <대한민국표류기>가 떠올랐다.책을 읽다가 그 책이 적힌 문장 하나 하나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그것을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흔하진 않지만 가끔 그런 적이 있다. <대한민국표류기>를 읽을 때도 그랬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을 때도 그랬다. 한 달 사이에 우연히 비슷한 느낌을 두 책에서 받았지만 <대한민국표류기>는 읽기를 중단하고 다시 펴보지 않았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단숨에 다 읽어내려갔다.
<대한민국표류기>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든데... 계속 읽고 싶지가 않았다. 초반 4분의 1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왜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 답안이 되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가. 나는 나대로 살련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해 주고 있다고 느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더 패배자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고 있다가 비슷한 생각이 활자화 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그동안 자기위로를 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실감나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이 책이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응원의 텍스쳐로 읽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하나, 그러기엔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내 정신이 그리 넉넉하지 못 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읽으려고 한 장, 한 장을 힘들게 넘겼으나 계속 읽고 있다가는 온 정신이 패배감으로 가득찰 것 같아서 과감이 접었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펼쳐 보지 않았으니 부산 집의 책상 위에 아직도 고스란히 올려져 있을 것이다. 책을 사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남았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공감되어서 한 문장, 그리고 그 다음 문장, 문장 하나 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는. 문장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감 정도는 <대한민국표류기>나 이 책이나 비슷한데, 어째서 하나는 지독하게도 안 읽어지더니 하나는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잠시.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이 책도 점점 책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난 뒤에는 '용두사미'형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희경의 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가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 글이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한 방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는 말에 난 그럼 유죄네 하고 끄덕이다가,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 나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려 보다가, 지금 나의 위치는 봄날이 간다의 이영애와 유지태 사이 어디쯤일까를 가늠해 보다가, 그러다가 그저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다.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남는 것도 그것 뿐이다.
두 작가 모두 문장력이 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간결하고 힘을 가지고 있다. 각자 조금 다른 이유에서긴 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아직 끝내지 못한 <대한민국표류기>를 유쾌히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 그 때까지 책장 한 켠에 잘 묻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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