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대한민국표류기>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2009/08/28 18:59 by 아리엘

나는 책을 사서 보는 편이다.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은 책이 사실 그리 많은 것은 아니나, '반납일'이라는 무언의 재촉에 쫓기듯이 읽어내는 것도 싫어하는 데다가 내가 엄청난 량의 책을 읽어제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로 사서 본다. 책 생각이 날 때 서점에 가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어떤 책을 살까 하고 고민하는 것도 행복하다.

각설하고, 어제 서점에 가서 행복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펼쳐 보았다. 책을 고를 때 공감되거나 강력하게 땡기는 부분이 있으면 주저앉고 장바구니에 넣는 스타일인데 이 책 중간에 꽂힌 기름 종이 한 장을 보고 사기로 마음 먹었다. 게다가 요즘 책들은 왜 그리 두꺼운 게 많은지 투덜거리며 고르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리 두껍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읽다보니 자연스레 여름 방학 때 읽다 말았던 <대한민국표류기>가 떠올랐다.

책을 읽다가 그 책이 적힌 문장 하나 하나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그것을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흔하진 않지만 가끔 그런 적이 있다. <대한민국표류기>를 읽을 때도 그랬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을 때도 그랬다. 한 달 사이에 우연히 비슷한 느낌을 두 책에서 받았지만 <대한민국표류기>는 읽기를 중단하고 다시 펴보지 않았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단숨에 다 읽어내려갔다.

<대한민국표류기>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든데... 계속 읽고 싶지가 않았다. 초반 4분의 1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왜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 답안이 되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가. 나는 나대로 살련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해 주고 있다고 느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더 패배자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고 있다가 비슷한 생각이 활자화 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그동안 자기위로를 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실감나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이 책이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응원의 텍스쳐로 읽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하나, 그러기엔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내 정신이 그리 넉넉하지 못 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읽으려고 한 장, 한 장을 힘들게 넘겼으나 계속 읽고 있다가는 온 정신이 패배감으로 가득찰 것 같아서 과감이 접었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펼쳐 보지 않았으니 부산 집의 책상 위에 아직도 고스란히 올려져 있을 것이다. 책을 사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남았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읽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공감되어서 한 문장, 그리고 그 다음 문장, 문장 하나 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는. 문장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감 정도는 <대한민국표류기>나 이 책이나 비슷한데, 어째서 하나는 지독하게도 안 읽어지더니 하나는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잠시.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이 책도 점점 책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난 뒤에는 '용두사미'형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희경의 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가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 글이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한 방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는 말에 난 그럼 유죄네 하고 끄덕이다가,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 나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려 보다가, 지금 나의 위치는 봄날이 간다의 이영애와 유지태 사이 어디쯤일까를 가늠해 보다가, 그러다가 그저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다.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남는 것도 그것 뿐이다.

두 작가 모두 문장력이 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간결하고 힘을 가지고 있다. 각자 조금 다른 이유에서긴 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아직 끝내지 못한 <대한민국표류기>를 유쾌히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 그 때까지 책장 한 켠에 잘 묻어두련다.

덧글

  • 정윤주 2009/09/05 15:36 # 삭제

    이런 강력한 제목을 갖고 있는 책들은 다들 용두사미형인거 같애...
  • 아리엘 2009/09/06 02:13 #

    ㅇㅇ 그런 게 많은 것 같다. 어느새 첫 주가 지났어 T_T 너는 어떻게 지냈느뇨 miss you!
  • 북로그컴퍼니 2010/03/09 15:10 # 삭제

    노희경 작가님의 감성수작 <거짓말 1,2> 대본집 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난 해 많은 사랑을 받은 <그들이 사는 세상>에 이은 노희경 작가의 두번째 대본집으로 한국 최초의 마니아 드라마인 <거짓말>을 읽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